STUDY/프래그머티스트

㉕ [개인과제 : 칼럼] 걸음마 미디어 no.2 아직도 바보상자라고 생각하시나요?_프래그머티스트

쿵야085 2019. 8. 2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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㉕ [개인과제 : 칼럼] 걸음마 미디어

 no.2 아직도 바보상자라고 생각하시나요?_프래그머티스트

 NO.2 아직도 바보상자라고 생각하시나요?

https://youtu.be/E68SI9PrUEY

 

 


텔레비전(Television)의 뜻은 무엇인가?

 

 

'멀리'라는 뜻의 그리스어 'Tele'와 '본다'라는 뜻의 라틴어 'Videre'의 합성어에서 탄생한 텔레비전(Television)

은 말 그대로 움직이는 영상을 전자기파를 이용해 먼 곳으로 전송하는 장치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19세기부터

이론적으로 제시되었고 정지된 화상의 전송 장치는 실제로 제작되었다.

 

TV에 대해서 질문하다!

 

이번 칼럼을 읽으려는 여러분들에게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TV의 발명가는 누구일까?

혹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창피하지만, 나는 에디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면 혹시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존 로지 베어드(1888.8.13~1946.6.14)

영국(스코틀랜드)의 엔지니어로 1924년 2월 런던에서 닙코브 원판을 이용해

인형의 상을 맺히게 함으로써 반기계적인 아날로그 텔레비전이 가능함을 보였다.

 

그럼 혹시 존 로지 베어드가 최초의 텔레비전 발명가 또는 텔레비전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면 밑에 보이는

동영상을 한번 보자!

 

https://youtu.be/YPTQ_Il244M

 

 

혹시 나오는 건 옛날 텔레비전 영상이고, 들리는 건 영어인데 머리에 남는 건 하나도 없으시다면......

똑같은 생각을 했었던 나와 함께 차근차근 알아보자 최초의 텔레비전 발명가 필로 판즈워스(Philo Taylor Farmsworth 1906~1971)

 

위의 영상은 1957년 CBS의 게임쇼인 '내게는 비밀이 있어요'에서 출연자가 누구인지 맞추는 것이었다. 여기에 출연했던

판즈워스는 안타깝게 아무도 누구인지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상금 80달러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프로그램 사회자였던 영화배우 게리 무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일자리가 없었겠군요."

<판즈워스가 14살 때(1920) 리그비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실 칠판에 그렸던 이미지 튜브 스케치 그림>

 

판즈워스가 왜 텔레비전 최초의 발명가가 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 하나만으로 이 이야기가 끝날 수 있는 분량이 이기 때문에 밑에 주소를 참고하기 바란다.

 

http://blog.naver.com/domabaemjari/60093048672

 

그리고 하나만 더 덧 붙이자면 판즈워스가 특허권 때문에 법정공방에 필요한 돈을 구하기 위해 영국에 간 판즈워스는 기계식 TV를 개발한 선구자인 영국의 로지 베어드를 만났다고 한다. 로지 베어드는 자신이 만든 기계의 우월성을 계속 얘기를 하다가 판즈워스의 TV 시연을 본 지 수분만에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고 한다. 당시 베어드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연구가 쓸데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베어드 회사의 이사는 5만 달러를 지불하고 판즈워스의 특허 접근을 확보하고 합병해 전자 TV 장비를 제공하는 협정을 꾀한다. 그만큼 판즈워스의 TV가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최초의 TV 방송국은 어디였을까??

 

hint: 여러분들은 벌써 그 방송국의 이름을 여러 번 들어 보았다! 영국에 위치하고 있다.

 

-BBC Daily Brodcastiong, 50th Anniv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전자식 TV와 다른 기계식 TV를 이용해서 영국 BBC 방송이 세계 최초로 TV 방송을 실히 한 것은 1929년 9월 30일이었다. 그 후 베어드는 주사선을 30개로 늘린 새로운 TV 모델을 개발해 BBC를 통해 1935년까지 시험방송을 실시했다. 시험방송이 끝날 때쯤에서 베어드의 TV는 영국에 4천대가 보급됐다.  그러나 베어드의 기계식 TV는 전자식 TV에 의해 철퇴를 맞았고 BBC방송이 1936년 111월 2일 정규 TV 방송을 시작하면서 EMI가 개발한 전자식 TV를 채택하였다.

 

그럼 컬러 TV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미국의 콜로비아 방송(CBS)이 세계 최초로 상업 컬러 방송을 1951년 6월 25일 오후 4시 35분부터 시작했다 제1회 출연자는 FCC(연방통신위원회) 이사와 연예인들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모두들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역사적 비극인 6.25가 일어난 날이다. 그래서 미국은 10월 19일 국방동원국은 6.25 전쟁의 전략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컬러 TV 수상기 생산중지를 CBS에 요청하여 컬러방송은 연말에 중지됐다. 그 후에 NTSC 방식이 미국의 표준규격으로 채택되며 1954년 1월부터 방송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와서 우리나라의 최초의 TV 방송을 한 방송국은 어디였을까?

 

아마도 모두들 KBS가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KBS가 아니었다

1956년 5월 12일 오후 7시 30분, 우리나라 최초의 TV 방송 전파가 발사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일본, 태국에 이어 4번째 TV 방송국 보유국이 됐다. 방송국 이름은 코캐드(KORCAD), 미국 RCA사의 한국대리점을 맡고 있던 황태영 씨가 설립한 방송국이었다. 이날 서울 종각 건너편에 있던 RCA 빌딩 3층 스튜디오에서 선보인 첫 시험방송은 궁중 연례악 '취타'와 국악 합주곡'수제천이었다. 민속무용단의 승무와 백설희, 현인 등 인기가수가 대거 출연한 쇼프로도 2시간 동안 방송됐다. 화신백화점 앞과 서울역 등에 설치된 TV를 처음 본 시민들은 한결같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당시 매일 2시간씩 전파를 발사해서 방송을 하고 있었으나, TV광고를 할 수 있을 만큼 상업경제의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주 12시간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출혈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자운영을 하다가 창설 당시의 예상과는 달리 수상기의 보급도 여의치 못하게 되자 [KORCAD]는 TV 방송국의 운영을 단념하고 개국 1년이 채 못된 1957년 한국일보 사주인 장기영에게 매도해 버렸다.

 

우리나라의 컬러 TV의 시작은 세계 꼴찌였다.

 

컬러 TV 방송 계획이 처음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1971년이었다고 한다. 우리보다 GNP가 낮은 공산국가에서도 컬러 TV를 방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은 문화공보부는 늦어도 1974년부터는 컬러 TV 방송을 시작하기로 하고 미국 수출입은행으로부터 975만 달러의 차관을 도입하여 KBS에 컬러 TV 방송국을 세우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978년 컬러 TV 방송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이때는 세계 TV 방송사 가운데 우리나라만 흑백 방송을 하고 있었으며, 가전업계에서는 이미 컬러 TV를 생산하여 수출까지 하고 있었다. 각 방송국은 설비, 기술, 운용 등 컬러 TV 방송 준비를 마치고 일부 프로그램은 이미 컬러로 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반대가 워낙 완강했다. 흑백 TV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보다 훨씬 비싼 컬러 TV가 나오면 계층 간 갈등이 더욱 커지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그리고 언론에서도 컬러 TV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논조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 제2차 오일 쇼크가 오자 컬러 TV 도입은 1980년대 후반에 가서나 검토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에 12,12 반란으로 국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1980년 8월부터 컬러 TV 시판을 허용한 후 1981년부터 컬러 TV 방송을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프로야구를 필두로 각종 프로 스포츠 시대가 열렸다. 이는 정치적으로 국민의 시선을 정치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던 것으로 방송과 스포츠를 동시에 이용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TV 얼마나 보고 있을까???

 

 

 

 

  공전의 히트를 치거나 안방극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들은 매일 아침마다 전날 전국의 시청자들이 얼마나 시청했는지 바로 알 수가 있다. TV 시청률이 드라마의 인기와 흥행성을 재는 잣대가 됨에 따라 방송국 드라마 관계자들은 매일 아침마다 집계되는 시청률에 울고 웃는다. 그럼 이러한 시청률은 어떻게 조사할까?

  현재 우리나라 TV 시청률 조사는 전국 가구 중 표본 패널을 선정해 이들 가정의 TV 수상기에  '피플미터(people meter)라는 기기를 부착, 초단위로 시청률을 기록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이 방식은 1982년 영국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Audit if Great Britain)가 개발했다고 한다.

  패널가구에서 시청자가 TV를 켜면 피를미터는 TV에 부착된 전자장치를 통해 누가, 언제, 어떤 방송을 시청했는지를 초단위로 자동 기록해 시청률 조사기관의 중앙컴퓨터로 송신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은 물론 시청자들의 인구 통계학적 자료까지 얻을 수 있다. 특히 TNS미디어코리아는 서울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과 부산 광주 대구 대전에 거주하는 2천 가구, 약 8천 명을 패널로 구성해 시청률을 조사하고 있는데 대상가구는 프로그램이나 광고를 인지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만 4세 이상부터 연령제한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패널이 될 수 있으며 학력, 소득, 사회적 지위, 직업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이렇게 조사된 결과는 새벽 2시 이후 TNS 미디어코리아 본사 컴퓨터로 전송돼 통계 처리된 후 매일 오전 7시 각 방송사 등으로 전송된다.

 

오늘 잠시 TV를 꺼보자

 

https://youtu.be/QGwlbffgvMI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그리고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신이 잠들기 전까지 혹시 TV와 함께 하고 있지는 않나요? TV를 꺼보세요. 당신의 하루가 달라집니다.

 

 

다은 칼럼에서도 TV에 대해서 좀 더 다루겠습니다.

 

위의 리뷰는 프래그머티스트 활동하는 동안 작성하였던 리뷰를 맞춤법만 다시 점검하여 업로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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