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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한국문화] 경연일기 (율곡 이이) _ 책 리뷰_ 율곡 이이가 전하는 조선시대의 경연

쿵야085 2023. 12. 2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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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한국문화] 경연일기 (율곡 이이)

책 리뷰_ 조선시대 왕은 어떻게 공부했을까?

 

 

 

도서명ㅣ경연일기
부제ㅣ수천 년 지혜를 만나는 가장 손쉬운 길
저자ㅣ율곡 이이

역자ㅣ유성선, 유정은
출판사ㅣarte(아르테) 
출판일ㅣ2023년 12 18        
페이지ㅣ632쪽

 

 

 

 

저자 소개

저자 : 율곡 이이 (李珥, 석담, 숙헌)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꼽히는 율곡 이이는 1536년(중종 31) 오죽헌에서 아버지 이원수李元秀와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던 강릉이고, 고향은 파주 율곡으로, 그는 율곡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여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한 이래 모두 아홉 번의 과거에 합격하고 그중 일곱 번 장원하였다.

 

선조 2년, 홍문관 교리였던 율곡은 일종의 연구 휴가인 사가독서를 얻는다. 그 기간에 열정적인 정책 제안서인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제출하지만 그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망한 그는 관직을 떠난다. 이후 은거와 출사, 사직을 반복하다 38세에 홍문관 직제학으로 다시 중앙 정치에 복귀한다. 이듬해 정3품 우부승지가 된 율곡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당황한 선조가 신하들에게 제언을 구하자, 사회문제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만언봉사萬言封事]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 밖에도 평생 학문과 저술에 힘써 제왕의 지침서인 『성학집요聖學輯要』, 선비들의 기본 교육서인 『격몽요결擊蒙要訣』 등 많은 저술을 남긴다.

 

1582년,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세 번이나 사양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해 7월에 「인심도심설」을 지어 바쳤고 『김시습전』을 지었다. 8월에는 형조판서가 되고, 9월에는 의정부 우참찬이 되었다. 선조의 신임을 받아 고위직을 두루 거친 율곡은 병조판서로 있던 1583년(선조 16), 조정에 나아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 군정을 마음대로 하고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이유로 동인의 탄핵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듬해 정월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개혁안들은 당시 거의 채용되지 못했으나 그의 학문과 경세 사상은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인들에게 계승되었다.

 

역자 : 유성선

 

강원대학교 철학과 교수. 강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철학과에서 「율곡 심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율곡 전공자로 관련 저서 및 사상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진행 중이며, 한국철학 일반에 대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주요 연구 실적으로는 저서 『동·서 철학 상담』(공저, 2020), 『철학의 여러 문제와 철학실천』(공저, 2020), 『류성룡과 징비록』(2015) 등이 있고, 번역서로 『율곡의 『순언』: 유학자의 노자 『도덕경』 이해』(2015)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기자실기’의 기자동래설 분석과 철학 실천 연구」(2023), 「화서학파 한·중 지역 독립운동의 사상적 가치 및 전망」(2020), 「용득의의 사상을 통한 아카이브 구축과 전망」(2019) 등이 있다.

 

역자 : 유정은

 

강원대학교 철학실천연구소 연구교수. 강원대학교 철학과에서 「신사임당 예술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과 여성 철학,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여성들의 삶과 그 시기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 주요 연구 실적으로는 저서 『사임당 평전』(2016), 논문으로는 「율곡의선비행장 나타난 신사임당 연구」(2019), 「신사임당초충도 소재에 나타난 상징성 연구」(2021), 「이매창의 회화 연구」(2021), 「임윤지당의 『윤지당유고』에 나타난 안회 연구」(2022), 「『윤지당유고』의 傳에 구현된 여성관 연구」(2022), 「율곡의 「경포대부」에 숨겨진 신사임당의 사상 연구」(2023) 등이 있다.

목차

서문

 

경연일기

 

1565년(을축) 명종 20년

1566년(병인) 명종 21년

1567년(정묘) 명종 22년, 선조 즉위년

1568년(무진) 선조 1년

1569년(기사) 선조 2년

1570년(경오) 선조 3년

1571년(신미) 선조 4년

1572년(임신) 선조 5년

1573년(계유) 선조 6년

1574년(갑술) 선조 7년

1575년(을해) 선조 8년

1576년(병자) 선조 9년

1577년(정축) 선조 10년

1578년(무인) 선조 11년

1579년(기묘) 선조 12년

1580년(경진) 선조 13년

1581년(신사) 선조 14년

 

해설

 

성리학과 실학의 절묘한 조화

하나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

사회 개혁의 대하드라마, 경연일기

과거와의 대화, 오늘의 거울

 

율곡 이이의 생애(연보)와 관직

미주

 

 

ㅣ 율곡 이이가 전하는 조선시대 경연일기

 

이황이 병으로 사직하고 조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 임금의 그리움이 컸을 뿐만 아니라,
말이나 소 치는 아이들까지도 모두 그 이름을 사모하여 얼굴을 한 번 보았으면 하였으나
이황이 끝내 조정에 나오지 않으니, 식자들이 걱정하였다.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를 읽게 되었는데요. 퇴계 이황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어머니상의 불리는 신사임당의 아들인데요. 정말 관심이 없어서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거나, 이름을 모른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에 살면서 퇴계 이황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오천 원권 지폐에서 만날 수 있는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율곡 이이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율곡 이이가 관직 생활을 하며 남긴 글이 바로 경연일기입니다. 

 

경연은 조선시대의 임금이 유학을 공부하고 신하들과 많은 토론뿐만 아니라 국정을 협의하던 행사라고 하는데요. 경연은 임금이 되어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많은 임금이 참여하기를 꺼려했다고 하는데요. 이 경연에서는 임금과 신하들의 다툼도 꽤 많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율곡의 [경연일기]는 율곡이 30세인 1565년(명종 20년) 7월에 시작하여 46세 때인 1581년(선조 14년) 11월에 끝나는 약 17년간의 기록인데요. 경연에서 군신 간에 논란이 되었던 당시의 주요 사건과 관련 인물들에 관해 상세한 기록이 역사적 사실을 연, 월 일 순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경연일기]는 제자들에 의해서 비밀리에 필사되어 전해지다가 오랜 세월 후에 정본으로 출간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그 내용이 율곡의 시대적 고민과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솔직하게 평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른 시기에 정본으로 출판되었다면 큰 갈등의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연일기]가 중요한 이후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인 율곡 이이의 시선으로 조선의 정치와 사회, 문화와 학문의 모습을 살펴보고 율곡 이이가 평가하는 당시의 학자들의 사상을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는 지금과 전혀 다른 시대이기 때문에 분명 이 책을 그냥 한번 읽는다고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도 [경연일기]를 읽으며 쉽지 않게 읽었던 거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이 책은 역사책과 같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에 관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조선 시대의 법, 정치, 경제, 상황 등에 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장인 율곡 이이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책을 읽으면 지금 상황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많으며, 현재와 다른 상황이라도 율곡 이이의 깊은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어서 읽다 보면 충분히 도움이 됩니다. 

 

 

[경연일기]를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임금이 이이에게 "한나라 문제가 왜 가의를 등용하지 않았던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이는 다음과 같이 답을 했는데요. "한나라 문제가 비록 어질기는 했으나 뜻이 높지 못하여 가의의 말이 원대함을 보고 의심이 들어 등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은 큰 뜻이 있고 난 뒤에야 큰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주인은 두어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려 하는데, 목수는 큰 집을 지으려 한다면 주인이 어찌 그 말을 옳게 알아듣겠습니까."

 

저는 위의 내용을 보면서 지금 이 시대에도 리더가 큰 뜻을 품지 못하다면 과연 큰 뜻을 실행하기 위한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큰 뜻을 가지지 못한 사람 밑에 일하는 사람도 본인의 능력을 펼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처럼 책을 읽다 보면 지금의 시대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답니다.

 

번역과 해설을 맡은 유성선, 유정은 교수님께서 우리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번역과 해설에 신경을 많이 쓰셨다는 게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서양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번에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를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경연일기
아르테의 새로운 고전 시리즈, 〈클래식 아고라〉의 네 번째 편인 『경연일기』는 조선의 천재 유학자이자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의 저작으로, 1565년(명종 20년)부터 1581년(선조 14년)까지의 경연 내용을 담고 있다. 경연은 국왕이 학문을 닦기 위해 신하 중에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이를 불러서 경전이나 역사서 등을 강론하던 일을 의미한다. 강론이 끝난 뒤에는 국왕과 신하가 함께 고금의 도의를 논하고, 정치와 국정 현안 등을 토론하기도 했다. 율곡은 흔히 이기일원론을 정립한 유학의 거두로 알려져 있지만,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에 기반해 개혁을 주장한 정치가로도 크게 활약했다. 『경연일기』는 율곡이 중앙에서 관직을 지내던 당시에 남긴 것으로, 국정 전 분야의 구체적 개혁안이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었던 공납 문제는 이이가 제안한 수미법으로 개선되었고, 수미법은 후에 큰 변화 없이 대동법으로 정착되었다. 율곡이 경연에 참석하던 시기는 조선의 크나큰 폐단이었던 붕당 정치가 심화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율곡은 붕당 간 대립 해소에 힘썼을 뿐 아니라 정쟁에만 치중하는 붕당을 가리지 않고 비판했다. ‘편들기’를 기대한 이들에게 미움이나 비난을 받음에도 ‘모난 돌’이 되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성리학자였지만 불교, 도가 등을 폭넓게 수용했을 뿐 아니라, 실리를 추구하는 실학 정신을 보여주었다. 대학자임에도 대동사회를 건설하고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방적인 자세로 현실에 발 디딘 개혁안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당파 싸움에 몸담지 않고 백성과 나라만을 고민한 그의 개혁 정신이 『경연일기』에 잘 담겨 있다.
저자
이이
출판
아르테(arte)
출판일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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