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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_최한기와 니시 아마네의 세계관 비교

쿵야085 2019. 11. 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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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_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의 세계관 비교

 

 

도서명 ㅣ 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
저   자 ㅣ 임태홍
출판사 ㅣ 하움출판사
출판일 ㅣ 2019.06.10
페이지 ㅣ 228

 

저자 소개

저자 : 임태홍
성균관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의 역사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한국사상사학과에서 문학석사를 취득, 동경대학교 동아시아사상문화학과학과에서 문학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이다.

주요 논문으로는『동학신관의 형성과정』(1995, 석사학위논문),『동아시아 신종교에 보이는 신비체험과 그 사상』(2003, 동경대 박사학위논문),『천리교 교조 나카야마 미키의 세계관』(2003),『한중일 삼국의 ‘사(士)’ 개념 비교 고찰』(2011) 등이 있다. 저서로는『동아시아의 자국인식』(2014),『일본 사상을 다시 만나다』(2014),『일본 사상을 만나다』(2010), 역서로는『쌍전』(한순자 공역, 2012),『논어징』(임옥균 등 공역, 2010),『중국의 긴급과제』(한순자 공역, 2010) 등이 있다.

 

목 차

시작하며
1. 선비가 사무라이를 만날 때
2. 감사의 말
3.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 비교

제1장 조선의 소년, 선비가 되다

제2장 일본의 소년, 사무라이가 되다

제3장 조선의 실학과 일본의 소라이학

1. 실학: 실용을 더하다
2. 소라이학: 이론을 빼내다

제4장 선비의 ‘기학’과 사무라이의 ‘양학’
1. 실학에서 기학으로
2. 소라이학에서 양학으로

제5장 사무라이의 ‘학술’

제6장 사무라이의 종교론

1. ‘교문’과 종교
2. 정부와 종교
3. 학문과 종교

제7장 선비가 생각하는 ‘국가’
1. 최한기의 ‘국가’
2. 최한기의 ‘조선’
3. 최한기의 ‘치안’

제8장 사무라이가 생각하는 ‘국가
1. 니시 아마네의 ‘국가’
2. 니시 아마네의 ‘일본’
3. 니시 아마네의 ‘국방’

제9장 선비의 세계관: 도덕과 대동의 철학
1. 도덕의 세계
2. 대동의 천하

제10장 사무라이의 세계관: 생존과 전쟁의 철학
1. 생존의 세계
2. 전쟁의 철학

마치면서
참고문헌

 

ㅣ 호기심을 자극하는 첫인상

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라는 이 책 제목의 첫인상은 참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했습니다. 조선이라고 했을 때 대표하는 상징은 선비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사무라이는 선비라는 존재보다 훨씬 더 세계적으로도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유명합니다. 몇몇의 서양 영화에서도 사무라이는 다양한 형태로 등장을 합니다. 악의 축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신비스러운 스승과 같은 존재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바라볼 때 동양은 신비의 나라인데 특별한 정신 같은걸 보여주는 사무라이는 더 신비스러운 존재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존재인 사무라이와 선비가 만난다는 타이틀을 통해서 과연 어떤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너무나도 넘쳐났습니다. 

 

ㅣ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의 비교

이 책의 목차를 보면 선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특정한 세계관, 그리고 사무라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특정한 세계관에 관해서 철저하게 일대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항상 가까우면서 먼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일본과 우리나라입니다. 

왜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면서도 심리적으로 혹은 생각하는 사고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지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걸 어느 순간에 이해하게 됩니다. 칼보다는 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대한민국의 역사, 펜보다는 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의 역사. 그 근본부터가 일본과 대한민국은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일본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일본 대비 2배의 무력은 지니고 있어야지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에게 까불지 않을 거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무력으로 넘볼 수 있는 상태에 있을 때는 넘어서고 싶은 존재로 비치는 거 같습니다. 대비해서 우리나라는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본에게 2번의 침략을 받았지만 거꾸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쳐들어가지는 않는 선비의 나라입니다. 

(선비라는 뜻이 선 한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 같네요)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에 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면 도움이 됩니다. 

 

최한기에 관해서...

최한기(崔漢綺, 1803~1877)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로, 기존의 동서양의 학문적 업적을 집대성한 수많은 연구 저서를 내고 한국의 근대사상이 성립하는데 큰 기여를 한 실학자이다. 최한기가 살았던 19세기는 17세기 이후 조금씩 밀려오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는 조류가 조선에 본격적으로 큰 파고를 만들어 내던 시기였다.
19세기 서세동점을 인식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정약용, 김정희, 최한기, 박규수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최한기는 ‘기학(氣學)’이라는 학문 체계를 통해서 동서양의 학적 만남을 꾀했고 이를 통해 조선이 처해있는 난국을 헤쳐나갈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최한기는 1803년 최치현과 청주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삭령이다. 개성 출신이지만, 대부분 서울에서 살았다. 본가와 외가는 여러 대에 걸쳐 개성에서 거주한 집안이었고, 최한기 또한 개성에서 출생하였다고 전한다. 자는 지로(芝老)이며 호는 혜강(惠岡), 패동(浿東), 명남루(明南樓) 등을 사용했다. 최한기 집안은 조선전기 대학자인 최항(崔恒, 1409~1474)의 후손으로 되어 있는데 직접적인 혈손은 아니다. 직계로 보면, 8대조인 최의정이 음직으로 감찰직을 지냈다고는 하나, 증조부 최지숭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문무과는 물론이고 생원진사시에도 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한 한미한 가문이었다.
부친인 최치현은 효성이 지극하고 글을 잘해 영락한 삭녕 최씨 가문을 일으킬 재목으로 일찍이 촉망받았다. 그러나 과거 응시에 번번이 낙방하여 출사가 좌절되면서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벼슬길과는 인연이 멀었지만, 개성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문명(文名)이었다. 최치현과 장인인 한경리는 사위와 장인 관계를 넘어 제자와 스승관계였다. 그러나 부친인 최치현은 최한기가 10세 때인 1812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부친의 사망 당시 최한기는 큰집 종숙부인 최광현의 양자로 이미 입양된 상태였다.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던 본가에 비해 양가는 무과이 집안이었다. 양부 최광현은 1800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지방 군수를 지내기도 했다. 많은 책을 소장하고 거문고도 켤 줄 아는 교양있는 인물이었던 최광현은 최한기의 외조부인 한경리를 비롯하여 한경의·김천복·김헌기 등 개성 지역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최한기의 학문적 바탕은 친부와 양부 모두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꾸준히 신분 상승을 도모하던 최한기 집안이 상층 양반이 된 것은 아들 대에 와서였다. 최한기는 1825년에 생원에 급제하였지만, 벼슬길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의 아들 최병대가 186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왕의 시종신이 되었다.

- 출처 ㅣ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니시 아마네에 관해서...

니시 아마네는 에도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기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이다. 서양 학문에 뜻을 두고 쓰와노 번을 나와 양학 교육기관이었던 번서조소에 들어갔다. 1862년 막부 명령으로 네덜란드 라이덴대학교로 유학을 가 피세링 교수 밑에서 법률, 경제, 철학을 배웠다. 귀국하여 개성소 교수로 취임하였으며,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정치 고문 역할을 하였다. 번역서 『만국공법』을 통해 국제법을 설파하였고, 계몽단체인 명육사를 결성하여 서양 학문의 보급을 위해 노력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는 군대 제도의 정비에 힘을 쏟았으며 원로원 의관, 귀족원 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니시 아마네는 메이지 시기에 서양의 근대 용어를 일본어로 도입하는 데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그중 유명한 것은 ‘철학’이라는 단어의 발명이지만, 현대 일본인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 니시 아마네가 만든 조어가 상당히 많다. 이 새로운 단어들 대부분은 전통적인 한자의 재편성에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어서 완성시켰다.

‘외국어를 외국어 그대로 소개하면 전문 학자에게는 그런 대로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 생각하는 어휘가 세상 일반에 널리 보급되지 않는다. 니시는 서구의 개념은 서구 언어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와 의도를 우리 일본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철학’이라는 번역어 이외에도 ‘주관, 객관, 이성, 귀납, 연역, 예술, 문학, 심리, 과학, 기술, 권리, 의무’와 같은 수많은 번역어가 아마네에 의해 창안되었다. 막부 말기에 태어난 니시 아마네는 유학과 양학을 배운 후에 그것을 독자적인 사고로 이해하였기에 이와 같은 작업을 해낼 수 있었다.

- 출처 ㅣ 네이버 백과사전

 

ㅣ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읽어보자

책의 제목이 재밌어 보여서 일까,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착각 중에 하나는 이 책이 어떤 문학적인 깊이보다는 흥미위주의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지 않을까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들은 모두 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하나의 논문입니다.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의 세계관을 비교한 논문을 한 권의 책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만큼 이 책을 쓴 저자는 논리적인 관점에서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를 비교하고 있으며 그들의 과거 행적들 혹은 업적에 관해서도 자세하게 관찰하고 분석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은 조금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근현대사에 있어서 왜 대한민국을 일찍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하지 못했고, 일본은 일찍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근대화가 되었는가에 관해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기를 추천합니다. 

 

ㅣ 저자의 고민과 노력이 보이는 책

이렇게 많은 참고서적이 있는 책은 지금까지 많이 보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정말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책들과 논문들을 살펴보았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또한 이 책을 쓰면서 주변의 연구원 및 전문가들에게 최한기와 니시 아마네를 비교하는 것에 있어서 부정적인 견해를 주었던 사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많은 고민도 하였고 많은 노력도 했다는 것이 이 책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니시 아마네는 외국어를 일본어로 사용하는 데 있어서 일본에 없는 개념들을 일본어로 옮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서도 이 말들을 현재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단어가 '철학'입니다. 

그만큼 일본을 넘어서 아시아권의 근현대사에 큰 역할을 했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는 좋은 평가를 받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이 책을 쓰는 저자로서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어쭙잖게 준비해서는 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ㅣ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이 책의 서문을 보고 있으면 일본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진다면 다시 한번 더 한반도를 침략하고 싶어 질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 글이 보입니다. 우리는 벌써 일본에게 두 번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런 과거를 통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요? 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일본이 하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예상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본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바라보고 대응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더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지 현재와 미래도 똑바로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선비가 일본 사무라이를 만날 때
국내도서
저자 : 임태홍
출판 : 하움(구 지민출판)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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